수차

2015. 6. 29. 23:12 from MEMO


수차 Aberration


 렌즈의 신기함에 감탄을 자아내며 빠져들기 전에,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빛이 렌즈의 중심축 근처를 지난다는 가정하에 모든 논리를 전개해왔다. 그러나 실제의 렌즈는 제법 덩치가 크기 때문에 중심축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빛이 들어올 수도 있으며, 따라서 렌즈를 통과한 모든 빛들은 정확하게 한 지점으로 모아지지 않는다. 이로부터 발생하는 렌즈의 오차를 수차 aberration 라 한다. 하나의 렌즈에 나타나는 수차는 여러 종류가 있다. 예를 들어, 렌즈의 중심을 통과하는 빛은 정확하게 초점을 향하고, 중심 근처를 지나는 빛도 거의 정확하게 초점을 지나가지만, 중심축에서 멀어질수록 초점을 벗어나면서 상이 흐려진다. 특히, 렌즈의 끝부분을 통과하는 빛은 심각한 오차를 발생시켜서, 렌즈를 통해 하나의 점을 관측해보면 둥그스름한 영역에 퍼져 있는 것처럼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렌즈의 면을 4차곡면이 아닌 구면으로 가공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흔히 '구면 수차 spherical aberration' 라 한다. 구면 수차는 렌즈의 표면을 정밀하게 재가공하거나 여러 개의 렌즈를 붙여서 오차를 상쇄시키는 방식으로 극복 할 수 있다.

 렌즈가 갖고 있는 결함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유리 속을 통과하는 빛은 색상(파장)에 따라 속도(또는 굴절률)가 다르기 때문에 초점이 맺히는 위치도 모두 다르다. 그래서 하얀색 점을 렌즈로 들여다보면 없던 색들이 마구 나타난다. 이런 현상을 '색 수차 color aberration'라 한다.

 또 다른 수차로는 '코마(coma, 비대칭 수차라고도 함)'를 들 수 있는데, 이 현상은 물체가 렌즈의 주축에서 많이 벗어나 있을 때 발생한다. 렌즈로 어떤 물체의 상을 정확하게 잡은 후, 그 위치에서 렌즈를 조금 기울이면 코마가 발생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코마'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렌즈를 통해 맺혀진 상이 마치 혜성(comet)처럼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 옮긴이]. 렌즈 디자이너들은 여러 개의 렌즈를 이어 붙여서 다양한 수차를 상쇄시키고 있다.

 렌즈의 수차를 모두 극복하려면 얼마나 많은 보정을 해줘야 할까? 완벽한 렌즈를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렌즈로 들어오는 모든 빛들을 정확하게 한 점으로 모아주는 완벽한 광학 기계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최소 시간 원리에 입각해서 따져볼 때, 이 광학기계의 완벽함에는 과연 한계가 없는 것일까? 광학 기계가 어떻게 생겼건 간에, 거기에는 빛을 받아들이는 입구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광학 기계가 완벽하다면, 초점을 지나는 빛들 중 주축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빛이라 해도 소요 시간은 정확하게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철학적인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은 이렇게 수정되어야 한다. "가장 바깥쪽으로 들어오는 빛과 주축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시간차는 어느 정도까지 일치될 수 있는가? 더 이상 수정을 가할 필요가 없는 한계는 어디인가?"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정확한 렌즈를 원하는가에 달려있다. 가능한 한 완벽한 렌즈를 만들고 싶다면, 가능한 한 모든 경로의 소요 시간이 같아지도록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확도라는 것이 어느 한계를 넘어셔면, 더 이상의 정확도를 추구하는 것은 의미를 잃게 된다. 광학 기계가 감당할 수 있는 정확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보존 법칙이나 질량 보존 법칙처럼, 최소 시간 원리는 정확한 서술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을 근사적으로 표현한 이론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오차가 광학 기계를 이용한 관측 결과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정확성을 추구할 이유가 없다. 중심축에서 가장 벗어난 빛과 중심축을 지나는 빛의 시간차가 빛이 한 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주기)보다 짧다면 여기서 더욱 정확성을 기한다 해도 광학 기계의 성능은 개선되지 않는다. 빛은 명확한 주기를 가진 진동체이고 진동은 곧 파장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입사된 빛의 시간차가 빛의 한 주기보다 짧다면, 더 이상 기계를 수정할 이유가 없다. 



 -파인만 빨간책 1권에서 발췌-



Posted by WAARWOLF :